영조의 금주령 과연 제대로 먹혔을까? 당신도 술을 즐기셨다면서요...

술
이미지 출처 - 사진: UnsplashFood Photographer | Jennifer Pallian


 조선 시대에 술 한 잔 마셨다가 진짜로 목이 날아갈 수 있었다면 믿기겠어요? 😱

그 한가운데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영조와 그의 금주령입니다.
오늘은 “술 혐오자이자 애주가(?)”였던 영조의 모순 가득한 금주 정책을 한 번 파헤쳐 볼게요 🍶❌


1. 먼저, ‘금주령’이 뭔데? 🍶🚫

조선 시대의 금주령(禁酒令)은 말 그대로 “술을 빚지 말고 마시지도 말라”는 국가 차원의 명령이에요.
특히 큰 가뭄·흉년·기근 때 자주 내려졌습니다. 이유는 세 가지였죠.

  1. 곡식을 술로 빚지 말고 백성들 먹을 밥으로 돌리자 🌾

  2. 근신·절제를 통해 하늘의 노여움을 풀자라는 유교적 발상 🙏

  3. 술값·잔치비를 줄여 가계와 국가 재정을 아끼자 💰

그래서 태조 때부터 여러 임금들이 간헐적으로 금주령을 내렸는데,
그중 가장 길고 강력했던 금주령의 주인공이 바로 영조입니다.


2. 영조의 금주령, 뭐가 그렇게 극단적이었나? 😨

2-1. “거의 재위 내내 금주 모드”였던 왕

영조(재위 1724~1776)는 52년 동안 왕 노릇을 했는데,
그 기간 내내 크고 작은 금주령을 여러 번 반복해서 내렸다고 전해집니다.

특히 영조 31년(1755) 가을, 큰 흉년이 들자
조선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금주령이 선포됩니다. 이 금지 조치는
무려 10~11년 정도 이어졌다고 알려져 있어요.

  • 술 빚는 것 금지

  • 술 파는 것 금지

  • 술 마시는 것도 금지

  • 심지어 국가 제사에 쓰는 술까지 제한

그야말로 나라 전체를 ‘드라이 조선’ 모드로 만든 셈이죠.


3. 영조는 왜 그렇게까지 술을 막았을까? 🤔

3-1. 흉년과 기근 – “쌀을 술로 날리지 마라” 🌾

영조 시대에는 크고 작은 흉년과 기근이 여러 번 왔습니다.
이때 백성들 입장에서 쌀은 목숨이었는데, 술도가들이 그 쌀로 술을 빚어 팔아버리니
영조는 이걸 참을 수 없었죠.

“백성의 주식인 쌀이 술을 빚는 데 쓰이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”는 기록이 있을 정도입니다. 

그래서 금주령의 가장 큰 명분은
👉 “술 대신 밥부터 먹이자”, 즉 곡식 절약이었어요.

3-2. 주폭과 당파 싸움 – “술이 광약(狂藥)이다” 🍶😡

영조는 술을 광약(미치게 하는 약)이라고까지 부릅니다.

  • 관리들이 술 마시다 감정이 격해져 당파 싸움 → 폭행

  • 술 취한 사람들의 폭력, 범죄, 예법 파괴

이런 사건들이 계속 보고되면서,
영조는 “술이 사람을 악하게 만든다”고 확신하게 됩니다.

그래서 금주령은 단순한 경제 정책이 아니라
👉 풍속 교화 + 사회 안정을 노린 정책이기도 했어요.

3-3. 유교적 도덕과 예법 – “예가 무너진다” 📜

조선은 유교 국가였고, 절제, 검소, 예법 준수가 최고의 가치였죠.
영조는 백성들이 술에 취해 예법을 어기고,
제사·혼례가 허례허식 잔치로 변질되는 걸 매우 싫어했습니다.

그래서 금주령에는 항상

“몸을 삼가고 마음을 바로 하라”
는 도덕 교훈이 따라붙었어요.


4. 금주령, 얼마나 세게 집행했나? ⚔️

영조의 금주령이 악명(?) 높은 이유는
처벌 강도가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입니다.

4-1. “술 마시면 사형까지” 😱

영조는 금주령을 어긴 사람을
최대 사형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.

실제로 병마절도사 윤구연
금주령을 어기고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
한양 숭례문 앞에서 공개 참수를 당합니다.

왕이 현직 군 지휘관까지 베어버린 거라,
“이 정도면 진짜다…” 싶은 공포 분위기가 조성됐겠죠.

4-2. 영조의 심리전 – “네가 형장에서 죽을 때를 상상해 봐라” 🩸

영조는 <어제경민음>이라는 글에서
금주령을 어겨 처형당하는 장면을 아주 생생하게 묘사해
백성들에게 읽히게 합니다.

  • 부모 형제가 발을 구르며 오열하는 모습

  • 높은 대 위에서 목이 달아나는 장면

  • 죽은 넋이 “술 때문에 이렇게 됐구나” 하며 후회하는 상상

이걸 일부러 감정 몰입형 공포 마케팅처럼 쓴 거예요.
“이걸 읽고도 술이 넘어가겠냐”는 수준이었죠 😨


5. 그런데 제사와 외교는? 예외도 있었다! 🏯🍶

완전 100% 금지는 아니었습니다.

5-1. 종묘 제사 술까지 줄여 버리다

원래 종묘 제사에는 제사주(술)가 필수였지만,
영조는 제사에서도 진한 술 대신 ‘감주(단 술)’를 쓰게 하는
제사 술까지 줄이려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.

다만 제사를 완전히 무알코올로 만들지는 못했고,
왕실·종묘·사신 접대 등은 일정 부분 예외가 있었어요.

5-2. 일본 사행단, 술 안 마셔서 난감하게 만들기 🍶❌

1763년 일본에 파견된 조선 통신사 조엄
영조의 금주령 때문에 사행 내내 술을 입에 대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.

  • 일본 측이 내온 술 절대 안 마심

  • 심지어 술지게미에 절인 전복 요리도 “술 냄새 난다”며 거절

  • 관례적으로 술잔을 맞바꾸며 우의를 다지는 의식도 못함

외교 분야에서도 금주령이 실제로 영향을 준 사례죠.


6. 그런데… 영조 본인은 술을 꽤 좋아했다? 🍶😅

여기서부터 이 이야기가 더 흥미로워집니다.

6-1. ‘송절차’의 정체는 사실 ‘송절주’?

조선왕조실록에는
영조가 금주령을 내린 뒤 송절차(소나무 마디를 넣어 끓인 차)를 마셨다고 되어 있는데,
일부 연구자들은 이것이 사실은 송절주라는 약술이었다고 봅니다.

  • 송절주: 소나무 마디 + 쌀로 빚은 약용 술

  • 어떤 기록에는 영조가 송절차를 내렸는데 신하들이 취기가 돌았다는 말도 나옴

  • 어사 박문수가 영조에게 “술을 좀 줄이시라”고 충고했다는 이야기도 있음

즉,
“백성들아 술 끊어라!”라고 외치던 영조가
뒤에서는 약술이라는 이름으로 술을 즐겼을 가능성이 꽤 크다는 거죠 😂

6-2. 약주·약용주는 예외였던 시대

또 영조는 약으로 쓰는 술(약주)에 대해서는
상대적으로 관대했습니다. 금주령이 내려져도

  • 의학적으로 필요한 술

  • 왕의 건강, 일부 신하들의 병 치료 목적 술

등은 예외로 남았습니다.

그래서 “술은 나쁘다”면서도
“약술은 괜찮다”는 이중 규범이 자리 잡게 돼요.


7. 금주령이 가져온 부작용들 💣

7-1. 술집·주막·양조업자들의 몰락, 그리고 밀주

강력한 금주령은
당연히 술집·주막·양조업자들에게 치명타였습니다.

  • 생계의 기반이 사라지고

  • 몰래 술을 빚는 밀주, 암거래가 늘고

  • 관리와 상인 사이에 뇌물·뒷돈 구조도 생겼다는 비판이 있습니다.

술을 완전히 없애려다 보니
오히려 지하 경제를 키운 셈이죠.

7-2. “벌 받는 건 왜 항상 백성뿐이냐” 😓

실제 금주령 위반으로
강하게 처벌받은 사람들 상당수는 서민·하층민이었습니다.

반면
왕실·양반·고위 관료층은
제사, 연회, 약술 등을 이유로 술을 계속 접할 수 있었죠.

그래서 후대 평가는 이렇게도 말합니다.

“조선의 금주령, 벌 받는 건 백성뿐이었다”

도덕과 절제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,
실제 운영은 계급 불평등을 드러내는 정책이기도 했던 셈입니다.


8. 금주령의 끝 – 정조가 풀어버린 ‘드라이 조선’ 🔓

영조가 죽고 정조가 즉위하자,
정조는 금주령을 상당 부분 풀어버립니다.

  • 정조는 영조와 달리 애주가로 알려져 있고,

  • 한양에 다시 술집이 많이 생기며

  • 술 관련 사회 문제가 다시 등장합니다.

결국 영조의 금주령은

  • 곡식 절약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지만

  • 밀주·불법 술, 서민 불만, 위선 논란 같은 부작용도 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.


9. 오늘날 술, 얼마나 마시는 게 좋을까?
     (섭취 권고 + 안주/조리 팁) 🍺🥗

역사 이야기를 하다 보니
자연스럽게 지금 우리의 음주 습관도 생각나죠 😊

9-1. 현대 기준으로 본 ‘적정 음주량’ 🍶

우리나라와 WHO, 각종 가이드라인을 정리하면 대략 이 정도가 권장 상한선입니다.

  • 표준 1잔

    • 순수 알코올 약 10~14 g 정도

    • 대략

      • 맥주 1캔(355 mL)

      • 와인 1잔(약 120~150 mL)

      • 소주 1/4병(약 90 mL) 정도

  • 1일 기준 (일반 성인)

    • 남성: 2~3잔 이내

    • 여성 및 얼굴 빨개지는 체질: 1~2잔 이내

  • 1주 기준(과음 피하기)

    • 남성: 소주 2병 이내

    • 여성: 소주 1병 이내

그리고 요즘 WHO·질병관리청은
“건강을 위해 완전히 안전한 알코올 양은 없다,
가능하면 덜 마실수록 좋다”는 쪽으로 가고 있다는 점도 함께 기억하면 좋아요 🙏

정리하자면, 막걸리·소주·전통주를 마실 때
👉 1회 1~2잔, 주 1~2회 이내가 가급적 안전 쪽에 가까운 선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.

9-2. 술 마실 때 어울리는 안주 & 조리 방법 🍲

술 자체도 일종의 ‘식품’으로 볼 수 있고,
같이 먹는 안주도 중요하죠.
과일·채소·단백질 위주의 안주가 좋습니다.

예를 들어,

① 두부김치 🥢

  • 권장량:

    • 술 마실 때 1인당 두부 100~150 g 정도,

    • 김치는 짜지 않게 적당량(소접시 1~2번 덜어 먹는 수준).

  • 추천 조리법

    1. 두부는 삶아서 물기를 빼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썰기

    2. 김치는 너무 짜지 않게 한 번 씻어 살짝 볶기

    3. 식용유를 많이 쓰지 말고, 참기름·깨로 향만 살짝 내기
      👉 단백질 + 발효식품 조합으로 간에 부담을 덜 주는 안주가 됩니다.

② 생선구이(고등어·삼치 등) 🐟

  • 권장량:

    • 1회 섭취량은 생선 살 기준 80~100 g 정도

  • 추천 조리법

    1. 소금은 너무 세게 하지 말고 약간만 간하기

    2. 기름에 튀기듯 굽기보다,

      • 에어프라이어에 굽거나

      • 오븐/팬에 약불로 천천히 구워 기름을 좀 빼기
        👉 오메가-3 지방산이 풍부해 술 마실 때 부담을 조금 줄여줘요.

③ 채소 스틱 & 요거트 딥 🥕🥒

  • 권장량:

    • 당근·오이·셀러리 합쳐서 1컵 정도

  • 조리법

    1. 채소를 스틱 모양으로 썰고

    2. 플레인 요거트에 소량의 소금, 레몬즙, 후추만 넣어 소스로 사용
      👉 튀김 안주 대신 이런 걸 곁들이면 다음날 훨씬 덜 힘들어요 😊


10. 영조 금주령, 한 줄로 정리하면… ✍️

  • 곡식을 아끼고, 풍속을 바로잡겠다는 진심 어린 정책이었지만

  • 지나친 처벌, 계급 불평등, 왕 자신의 모순된 음주 습관 때문에

  • 결국 “의도는 좋았으나, 실행과 현실은 꼬인 정책”으로 기억됩니다.

그래도 이 이야기를 통해
우리는 최소한 이런 교훈은 얻을 수 있겠죠.

“국가가 통제해도 술은 사라지지 않는다.
결국 중요한 건 개인의 절제와 문화다.” 🍶🙂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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